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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의 뜻밖의 하루
1. 더 이상 침해받지 않는 나의 하루가 너무나 소중하다. 오로지 나의 의지로 꾸려갈 수 있는 이 시간들이 이렇게 값진 것이었다니! 이제는 나의 모든 활동이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선택에 의해서 결정된다. 해야 하니까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한다. 통상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이다. 서류를 제출해야 하고, 이른 시간에 출근해야 하고, 가스 고지서를 납부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한 활동이고,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내가 이용당하는 셈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은 나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한 활동이다. 나 스스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복무하는 것이다. 비로소 나를 위한 삶이 시작되는 듯하다. 남들을 위해 갖다 바쳤던 나의 시간과 건..
종종 그럴 때가 있다. 하루가 못 견디게 공허한 날. 집에 있어도, 카페에 있어도, 바깥에서 산책을 해도, 아무리 무언가를 해보려 발버둥을 쳐봐도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유리 관 안에 갇혀있는 듯한 숨 막히는 답답함이 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을 떠나 어딘가 멀리멀리 떠나버리고도 싶은 그런 무자비한 공허함. 다른 공간으로 훌쩍 떠난다면 나에게 들러붙어있는 이 그림자 또한 떼어놓고 갈 수 있을까. 친구들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또다시 돌아오는 약속 없는 하루엔 어김없이 답답함이 찾아온다. 혼자 남겨진 시간이 마치 누군가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늘여놓은 용수철과 같이 느껴진다. 끊임없이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지만 시간은 더디게 흐를 뿐이다. 퇴사하기 전에는 마냥 장밋빛일 것 같던 하루도, 막상 퇴..
https://youtu.be/rLtFCm_MJJE 얼마 전 유퀴즈에서 86세 할아버지의 놀라운 플랭크 영상을 보게 되었다. 플랭크를 하신지 벌써 3년이 되셨다고 하는데, 이미 83세의 나이에 새로운 운동에 도전하신 셈이다. 이 어르신의 인생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이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영어 원서를 보고서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 결심, 하루 100 페이지씩 무작정 읽으셨단다. 되든 안 되는 하루에 100페이지씩 읽자는 마음으로 매일 같이 읽고 달력에 체크했더니, 그렇게 6개월이 지나자 어느 정도 영어 책이 눈에 들어오게 되셨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하셔서 이후엔 대학을 자퇴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나중엔 미국 대학에 교수까지 되셨다. 어르신의 하루 일과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7분 플..
대병에 6월 1일 자로 입사하여 6월 10일에 퇴사했다. 이틀 간의 오프를 빼면 8일 동안 출근하고 간호사 생활을 마무리했다. 간호사, 참으로 힘들었다. 매일매일을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며 늘 눈물을 달고 살았다. 차라리 출근길에 잘못되었으면 좋겠다는 나쁜 생각을 할 정도로 스트레스는 극심했다. 탈임상, 참으로 잘했다. 간호사를 할 때는 하루하루가 막막하고 앞길이 어두웠는데 병원을 나오고 나니 내가 갈 수 있는 길, 할 수 있는 일들이 참으로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 하여 다시 정리해보는 나의 탈임상 이유, 1. 신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고생한다(근무 중에는 물론이고 퇴근 후에도 그렇다). 간호사는 탄다, 그것도 아주 자글자글. 재가 되도록. 그에 비해 월급은 적고, 인정받지도 못한다. 환자에게서..
대학을 다니는 6년 내내, 나는 당연히 간호사가 될 줄 알았다. 그리고 평생 간호사로 살 줄 알았다. 사람을 보살피는 게 좋고 내 몸은 고생스러워도 마음만은 뿌듯했으니까. 6년간 노력과 애정을 쏟아부은 간호학, 그리고 사람을 위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 남들보다 2년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데에서 오는 조바심과 졸업 후 첫 직장. 그 무엇 하나 쉬이 놓을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왜 열흘만에 병원을 뛰쳐나와야만 했을까. 먼저 간호사로 취업에 성공한 선배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들이 있었다. '출근하는 게 너무 무서워서 차라리 출근길에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라고. 근데 그 생각을 내가 하게 될 줄이야. 열흘 가량 근무하면서 수많은 업무, 선임들, 무자비하게 방대한 공부량 등등 많은 것들이 ..
6월 1일 자로 상급종합병원 종양내과에 발령받아 근무를 시작했다. 이제 2주 차, 거의 열흘이 다 되어간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힘들었다. 매일 우느라 눈은 항상 부어있고, 심계항진이 와서 잠은 제대로 자보지도 못하고, 8~9시간을 엉거주춤 서있느라 목과 허리, 발바닥이 욱신거리고, 오프날에도 출근할 생각만 하면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는 더 이상 살아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백 번씩 들었다. 물론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나름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에게는 다시는 돌아가기 싫은 나날들이었다. 남들은 입사한 게 아까우니 1년만 견뎌보고 임상 경력이라도 쌓아보라고 하지만, 난 단 하루 출근하는 것조차도 너무 괴롭고 무섭고 부담스러웠다. 짧은 기간 간호사로 살면서 결국 퇴사를 결정하게 된..
배치받은 병동에 오늘 첫 출근했다. 병동은 종양내과. '신규 간호사는 무얼 하나요?' '신규 간호사는 하는 게 없습니다. 왜나면 아는 게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 하는 게 없다. 아는 게 없다. 그저 열심히 배울 뿐이다. 우선 출근하고 1층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입뺀을 당했다. 출입증도 없고 뭣도 없으니까 옆에 있던 경비원?에게 올라가시면 안 된다고 제제를 당했다가 '첫 출근이시죠?'라고 묻는 말씀에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니까 '문 열어드릴게요'라는 대답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병원 올라가는 입구에서부터 코쓱머쓱;; 엘베를 타고 병동까지 올라가니 입구가 떡하니 닫혀있다. 역시나 출입증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 몰래 조용히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나, 환자들이 여길로 드나들 때 나도 덩달아 스윽 들어..
오늘은 참으로 요상한 하루다. 본가에서 독립해서 새 집으로 이사했다. 정신없이 짐 정리를 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사느라 마트와 다이소를 왔다 갔다 하고, 동사무소에 가서 전입 신고를 하고, 내일 출근을 위해 필요한 서류나 준비물을 준비했다. 정말이지 못해도 이만 보는 걸었을 거다. 더군다나 나만 바쁜 게 아니었다. 공인중개사에서, 관리 사무소에서, 도시가스에서, 어제 주문한 인테리어 물품들 회사에서, 수많은 연락들로 인해 나의 핸드폰마저 끊임없이 진동음을 내뿜으며 소식을 알려야 했다. 정신없이 쏘다니고 계속 바지런을 떨다가 집에 돌아와서 문득, '아 집에 가고 싶다' . . . '아 맞다, 나 지금 집이지' 익숙하고 정들었던 곳을 떠나 새로운 장소로 옮겨온다는 것은 늘 어느 정도의 센치함을 담고 있다. ..
병원 입사를 5일 앞두고,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일이 힘들 거라고 오히려 내 주변에서 나를 더 걱정해주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는 아무런 느낌조차 없다. (아니면 아직 뭘 잘 몰라서 그런 건가? 일단 그건 다음 주에 생각해보자.) 뭐든지 이미 각오를 해버리면 애초에 가졌었던 부담감조차 사라져버리나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만, 그거야 간호학과 입학할 때부터 알고 있었던 거니까. 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신규 간호사는 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 왜냐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장 책임질 것도 없고, 두려워할 일도 없다. 그저 가르쳐주는 프리셉터 선생님 따라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배우면 된다. (그분들도 업무 시간 쪼개가며 어렵게 가르쳐주시는 것이므로) 간호사는 나름..
왜 연애를 해도 불안할까? 아니다. 난 이 질문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연애를 하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연애라는 것은 가장 사적인 경험이고, 그렇기 때문에 가슴 가장 깊숙한 곳까지 뿌리를 내린다. 그로 인해 혹여 일이 잘못 풀릴 경우에 감내해야 할 내상은 그 뿌리를 들어내야만 하는 일이므로, 이는 엄청난 두려움을 자극한다. 불안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고 싶어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알 수 없는 미래와 주변의 위협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기민하게 대처하려는 이 '생존 모드'가 곧 불안인 것이다. 연애할 때 불안한 이유는 낮은 자존감 때문이라는 혹자의 의견에 반대한다. 상대방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친밀하고 사적인 공간에 상대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생존 모드'를 켤 수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