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나의 뜻밖의 하루

신규간호사, 열흘 간의 소회, 그리고 퇴사 결심 - 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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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간호사, 열흘 간의 소회, 그리고 퇴사 결심 - 1

세나SENA 2021. 6. 8. 20:16

6월 1일 자로 상급종합병원 종양내과에 발령받아 근무를 시작했다.

이제 2주 차, 거의 열흘이 다 되어간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힘들었다.

매일 우느라 눈은 항상 부어있고, 심계항진이 와서 잠은 제대로 자보지도 못하고,

8~9시간을 엉거주춤 서있느라 목과 허리, 발바닥이 욱신거리고,

오프날에도 출근할 생각만 하면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는 더 이상 살아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백 번씩 들었다.

 

 

물론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나름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에게는 다시는 돌아가기 싫은 나날들이었다.

남들은 입사한 게 아까우니 1년만 견뎌보고 임상 경력이라도 쌓아보라고 하지만,

난 단 하루 출근하는 것조차도 너무 괴롭고 무섭고 부담스러웠다.

짧은 기간 간호사로 살면서 결국 퇴사를 결정하게 된 요인을 꼽아보려 한다.

 

 

 

1) 간호사로써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대학에 들어온 이후로 줄곧, 간호대학을 6년간이나 다니면서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사람이고 싶었다.

학생 시절 병원 실습을 할 때에는 환자들을 만나며 그들을 돕고 있다는 뿌듯하고도 설레는 마음에 새벽같이 일어나 병원으로 향하기도 했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가 그 도움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 환자들을 들여다보고 보살피고 내가 건네는 따스한 말 한마디가 환자들에게 가닿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는 것.

더할 나위 없는 뿌듯함을 느끼며, 이런 게 진짜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그렇기 때문에 간호사는 나에게는 필연적인 결론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상급종합병원 간호사는 진정으로 사람을 간호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가 보아온 나의 병동은 그렇지 못했다.

너무나도 많은 업무 로딩을 처리하느라 바쁘고, 차팅을 남기느라 바쁘고, 교수들 회진 따라다니느라 바쁘고,

이러저러한 사유를 빼면 정작 환자를 대하는 시간은 너무나도 짧다.

 

일이 너무 많다 보니 콜벨을 누르는 환자, 이것저것 물어보는 환자, 처치나 추가 처방이 많은 환자는

간호사를 귀찮게 하는 짜증 나는 존재가 된다.

짜증을 내려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계적으로 약을 싸고, 라벨을 정리하고, 라인을 달고, 병동 순회를 하면서

내가 지금 간호를 하고 있는 건지, 잡무를 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환자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저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오는 물건 취급하듯 필요한 액팅, 차팅만 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양내과에는 터미널 환자들(말기 환자, 죽음을 앞둔 환자)이 많아서 거의 모든 환자들의 표정부터가 좋지 못하다.

항암제 부작용, 마약성 진통제 부작용, 암으로 인한 증상들이 모두 겹쳐 나타난다.

모르핀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통증, 까맣게 타들어가듯 거칠어지고 거무룩해지는 피부, 마약성 진통제 때문에 나타나는 변비,

밥 한 숟갈 넘기기 힘든 식욕부진, 항암제로 인해 빠지는 머리카락과 그로 인한 자괴감,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싶은 절망감.

 

그런 환자들을 대하는 선임 간호사들의 태도를 보며,

나는 이렇게 간호사를 할 바에야 아예 간호사 자체를 그만두어야겠다 뼈저리게 느꼈다.

이건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다 느꼈다. 내가 바란 간호는 이런 게 아니었다.

 

베드 테이블 위로 엎어진 듯 머리를 깊숙이 박고 있는 환자를 거기 앉혀두고 뒤돌아서자니

자괴감이 몰려왔다.

절망에 빠진 사람을 저기 그냥 내버려 두고 왔구나, 나는.

암으로 가까운 가족을 잃었던 경험이 있는 내가, 또 똑같은 짓을 저 사람에게도 하고 있구나.

콜벨을 자꾸 누르는 환자에게 짜증 내는 선임, 컴플레인이 잦은 환자를 뒷담화하는 선임, 평소 성가시던 환자가 전원을 가자 다 같이 좋다고 웃던 선임들. 나를 자꾸만 짓누르는 듯했다.

 

 

2) 미친듯한 업무량, 잡일, 오버타임은 당연한 것^^

3) 건강 파괴

4) 워라밸 파괴

5) 신규간호사는 왕따

6) 나 자신의 발전이 없다

 

나머지는 다음 편에서 차차 정리해보겠다.

이 글을 쓰면서도 너무 침울해져서 잠시 마음의 정리도 해야겠고,

아직 사직서를 제출한 건 아니기 때문에 내일 또 출근을 해야 해서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일을 하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다쳤지만

이 글의 2편을 쓰는 시점에는 부디 회복된 마음으로 돌아와 글을 쓸 수 있기 바란다.

 

여유롭게 강가를 거니는 것. 신규간호사는 절대 누리면 안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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