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나의 뜻밖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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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입사를 일주일 앞둔 날의 소회

세나SENA 2021. 5. 22. 21:22

오늘 공인중개사를 다시 방문해서 최종으로 방을 보고 계약을 했다.

병원 5분 거리에 나름 깔끔하고 쾌적한 곳으로 골랐다.

내가 살게 될 방을 살펴보고 주변 동네를 둘러보았다.

낯선 풍경과 사람들.

 

계약 과정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빠르게 흘러가는 설명들과 계약서 위로 바쁘게 쳐지는 형광펜 줄들.

그렇게 낯선 동네를 방황하고 쏘다니다가 익숙한 나의 방으로 돌아왔을 때 느껴지는 건,

 

이 곳을 곧 떠나야 하는구나.

 

 


 

 

무엇이 그리도 갑자기 나를 울적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신규 간호사로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 낯선 지역으로 이사 가야 한다는 점이, 익숙한 사람들로부터 떨어져야 한다는 점이, 혼자 힘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점이, 이제는 나의 어금니와 주먹을 꽉 죄어야 한다는 점이.

아니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덩이로 뭉쳐져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없는 무게로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방에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졌을 때, 쏟아지듯 두통이 몰려왔다.

가슴께 어딘가에 구속복을 채운 듯 답답함이 목 아래까지 차올랐다.

 

나 이제 어떡하지?

 

 


 

 

삶이란 게 누군가가 천둥 같은 목소리로 "움직여라!"라고 고함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언제까지나 내가 익숙했던, 내가 사랑했던 것들에 머무를 수 없다.

언젠가는 보내줘야 하고, 떠나와야 하고, 나는 새로운 땅으로 움직여야 한다.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그랬듯 어렵고 두려운 것 같다.

그래,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예전에도 항상 그랬었지.

처음 기숙사에 이사 왔을 때. 3학년 병원 실습을 시작할 때. 졸업을 하고서 기숙사 방을 정리할 때.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을 때.

심지어 지금 나의 연인을 만났을 때도 두려움과 낯섦에 떨어야 했다.

수도 없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바랐다.

 

새로운 시작이 두렵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아직 모르기 때문에 걱정이 앞선다. 아니, 어렴풋이 알기 때문에 걱정과 근심은 오히려 배가 된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분명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감에 있어서 또다시 나의 관습과 족적을 남기게 되리라.

지금 내가 서있는 이 땅도, 수없이 많은 나의 발자국을 남겨온 이 곳도,

과거의 나에게는 역시나 미지의 세계였다는 것을 잊지 말자.

나는 수없이 많은 몸짓으로 이곳까지 움직여왔으며, 이제 또다시 움직일 시간이다.

 

 

 

 


 

새로운 시작이 두려울 때, 내 삶이 정체되어 있던 때의 방황을 떠올린다.

모든 것이 착 가라앉아 한치도 움직이지 않는 그 숨 막히는 고요를 떠올린다.

국가고시가 끝나고,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더 이상 그 무엇도 주어지지 않았을 때, 더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을 때.

나는 도대체 무슨 의미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인가 생각했다.

매일매일 밥은 먹고 잠도 자는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인가 의문이 들었다.

주변에서는 마음 놓고 웨이팅 기간을 즐기며 놀아라, 라고 이야기하는데 스스로 하루하루 살아감의 의미를 찾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정말이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나는 정체되어 있다는 정체감. 늘 똑같은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지루함. 어제와 같이 반복되는 오늘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 무엇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내 마음속 블랙홀을 그 누구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외로움.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느껴지는 미묘한 긴장감은 그야말로 축복이다.

그리고 그 새로움과 낯섦 또한 곧 나에게는 익숙함의 영역이 되고,

또다시 내가 떠나가야 할 정겨웠던 옛 곳이 되리라.

 

4주간 머물렀던 밴쿠버를 떠나던 기차 안. 얼마나 펑펑 울었던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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