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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의 뜻밖의 하루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짧은 기간이지만 나는 참 많은 우여곡절을 지나왔다. 졸업한 뒤 첫 몇 개월은 내가 평생 간호사를 하며 살거라 생각하고, 내 머릿속에 간호사 외의 선택지는 생각조차 없었었다. 그러자 막상 간호사로 일하기 시작하자 현실에 부딪히고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을 보게 됐다. 대학 내내 '간호사'라는 직업만을 바라보며 살아오다가,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란 걸 별안간 깨달아 버린 순간. 마치 내가 망망대해 속으로 토해져 나와, 표류하게 된 하나의 종이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불안한 것도 많고 망설이는 것도, 모르겠는 것도 많았지만 나름 1년 정도가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래, 뭐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는 거네."라는 생각이 남았다..
벌써 CRC로 일한 지도 3개월 하고도 반을 넘겼다. 그래도 나름 3개월 넘겼다고 이제는 업무가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요령이 생기다보니 척하면 척 알아듣게 되어 주변 선생님들한테 일 잘한다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ㅋㅋ) 아마 내가 일하는 곳이 온코가 아닌 마이너 파트라 비교적 업무가 쉬운 것?일 수도 있다. CRC는 GCP 상 업무 scope이 온전히 정의되지 않기 때문에 병원마다, 과마다, 교수님마다 업무 분장이 천차만별인 듯하다. 시험자나 관리약사야 규정 상 어느 일을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정해져 있지만 CRC는 시험자가 위임하는 업무를 한다...라고만 쓰여있어서 CRC마다 하는 일이 제각각이다. 어떤 CRC는 data entry 정도만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CRC는 동의서 취득부터 채혈까지..
요즘 내가 자주 하는 생각. 사람은 앉은 자리 선 자리가 분명해야 한다. 사람은 언제 고민하고, 갈팡질팡하는가? 이득은 보고 싶은데, 그로 인한 책임은 지기 싫을 때이다. 가야 할 때를 알면서도 가지 못하는 태도는 그저 제자리에 머물러 퍼져있고 싶은 나태함이고, 멈추어야 할 줄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태도는 절제할 줄 모르는 방만함이다. 나는 왜 고민하고 갈등하는가? 끊임없이 이득만 보려 하고, 그에 따른 마땅한 결과는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마음 때문이다. 이 얼마나 도둑놈 심보인가? 선택을 했으면, 그에 따른 결과로부터는 도망칠 수가 없다. 돈을 빌렸으면 다시 갚아야 하고, 이득을 보았으면 그에 대한 값을 치러야 한다. 이로부터 도망치려 한다면 늘 숨어 다니는 처지밖에 되지 못한다. 내 삶에 주인이 되..
이번 달에 들어 CRC 3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평상시에는 병원에 틀어박혀 이것저것 일을 처리하느라 바빴지만, 어제는 조금 색다른 경험을 했다. 퇴근하고 교수님, 전문의, 약사, 다른 연구간호사 선생님들과 같이 제약사에서 주최하는 심포지엄에 다녀왔다.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장소가 서울에서 꽤 유명한 5성급 호텔이라 깜짝 놀랐다. 역시 병원이 아니라 제약회사라 이렇게 대단한 곳에서 하는 건가... 싶었다. 평생 가볼 일 없는 호텔 입구에서, 그리고 대강당 입구에서 온통 정장을 입으신 멋진 분들에게 인사와 안내를 받으니 얼떨떨했다. 교수님 덕분에 이런 경험도 다 해보는구나 싶었다. 나눠주는 도시락으로 식사를 한 뒤 심포지엄이 시작되었다. 우리 과에서 다루고 있는 희귀 질환을 주제로 하는 심포지엄이었고, 특히나..
어제 약물안전센터 연구간호사로 첫 출근을 했다. 출근 전날 밤부터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잔뜩 긴장해서 아침 6시가 되기도 전에 알람도 듣지 않고서 저절로 깨버릴 정도였으니까. 나 같은 잠꾸러기한테는 정말 천재지변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나 긴장되나 싶었다. 출근길 내내 불안한 마음에 CRC를 무작정 인터넷에 검색해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조치였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가만히 지하철에 내 몸을 실은 채 가기만 하는데도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다행히도 일하는 곳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좋았다. 약물안전센터에서 일하는 연구간호사는 내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연구간호사와 업무 내용이 조금은 차이가 있었다. 여기는 임상시험 중인 약물이 아닌, 이미 시판된 약물에 대해..
한 인간의 삶은 시간에서 출발한다. 그 사람이 시간을 보내는 방식, 시간을 바라보는 태도는 곧 인생에 대한 태도와 직결된다. 삶을 거시적으로 바라본다면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이고, 미시적으로 바라본다면 매일 마주하는 순간들의 누적이다. 이 두 가지 관점 모두 시간이라는 개념이 개입돼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렇다면 삶은 곧 시간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 시간은 무엇인가? 시간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을 어떻게 느끼는가? 세상의 모든 것이 낡고 늙고 죽어가는 하나의 방향성을 통해 우리는 시간의 존재를 체감한다. 그러므로 나는 시간을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로 표현하고 싶다. 시간은 하나의 방향을 향해 전진해간다. 시간은 과거를 지나와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한다. 달..
쓸모와 가치를 연결 짓지 마라. 어떤 것이 쓸모 있고 유용하다고 해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으로 어떤 것이 쓸모없다고 하여,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신자유주의 대한민국 땅에서 우리는 모든 것에 일일이 가격을 따지고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는 데 익숙해졌다. 본래 가격표가 매겨지는 재화와 서비스를 넘어서 이제는 가족과 우정, 사랑, 꿈에도 가격이 매겨진다. 그리고 가격은 곧 가치가 된다. 마치 비싼 상품들이 제값을 할 것이라는 기대처럼. 어제는 이런 마음이 들었다. 나의 사랑을 자본주의의 저울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이 사랑은 과연 나에게 어떤 효용이 있는가? 나는 사랑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이며 또 무엇을 감수해야 할 것인가? 연인과 함께 하는 동안 소모하는 나의 시간, 돈, 감정적 에너지를 저울..
내일 출근하기 매우매우매우 싫어서 쪄보는 글;;; 벌써 요양병원에서 근무한 지 3개월이 지났고, 이젠 퇴직까지 일주일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동안 3개월 동안 잘 근무했으면서, 막상 일주일 남짓의 근무일만 남게 되니 도대체 왜 세상 출근이 하기 싫은지. 말년 병장의 심정이란 게 이런 것일까 싶다. 남은 근무일들을 죄다 연차로 소진시켜버리고 싶은 마음이 뻐렁치지만, 내가 빠지면 급격히 인력이 부족해지는 병원 사정을 알기에,, 꾸역꾸역 내일 출근을 위한 마음을 가다듬는다. 자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서, 요양병원 간호사로 일하는 데 단점이 무엇일까? 내 생각에 요양병원의 단점은 대학병원과 비교했을 때 부족한 인프라로부터 오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인력이나 자본, 규모, 인프라 등 병원 전반에 대한 수준이 대학병..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관점에서 쓴 오로지 나만의 뇌피셜, 쌉소리입니다. 케바케, 병바병은 부동의 진리!* 요양병원에서 3개월 동안 일하고, 이제 퇴직을 3주 앞두고 있는 간호사로서 그간 일하면서 느꼈던 요양병원 근무 환경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요양병원을 그만두는 이유는, 애초에 간호사'만' 할 생각이 없어 이왕이면 이른 나이에 다른 분야에 도전해보자! 싶은 생각이기도 하고(왜냐면 간호사는 면허를 갖고 있으면 비교적 늦은 나이에도 충분히 진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늙어서 할 거 없으면 간호사나 하지' 뭐 이런 나이브할 수도 있는 생각,,,) 지금의 연봉 수준이나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회의적인 생각이 들어서이다.(물론, 이건 지금 내가 있는 병원만 해당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
어떻게 하면 무료하고 심심한, 때로는 공허한 주말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나에게는 언제나 주중보다도 주말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곤욕이었다. 뭐 하면서 주말을 보내야하는가?가 늘 딜레마였다. 새로운 곳으로 놀러 가는 거나 사람 만나는 것도 가끔이어야 즐겁지, 매주 그렇게 시간을 보내자니 영 외향적이지 않은 나에게는 체질이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집에서 온종일 빈둥거리면서 영화나 유튜브나 들여다보자니 머리에 남는 것도 없고 시간이나 죽이는 짓 같이 느껴졌다. 따로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는 주말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스무 살 때부터 몇 년 동안 골칫거리였다. 새로운 장소로 떠나야지 싶어도 딱히 가고 싶은 곳도 별로 없다. 겨우 몇 가지를 떠올려도 혼자서 가는 게 괜스레 부담스럽고, 교통편이니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