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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의 뜻밖의 하루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운동 유목민이었다. 원체 움직이는 거 싫어하고 아메바마냥 흐느적거리며 뒹구는 거 좋아하고 운동이라면 극혐하는 편인지라, 그래도 생존은 해야겠기에 꾸역꾸역 '운동'이라는 것을 해내면서도 어느 하나에 정착하지 못해 이리저리 떠도는 삶을 지속했다. 20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운동? 그게 뭐죠? 먹는건가'를 남발하며 나는 운동따위 안 해도 천년만년 오래 살 것 같았다. 운동 같은 건 다이어트를 위해서만 하는 건 줄 알았지~~~~ 젊고 패기 넘치던 그 시절을 지나고, 대학교 3학년만 되니 병원 실습 끝나고 기숙사 가는 오르막길에서 헉헉거리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여실히 그 바닥이 드러나버린 내 체력을 실감했다. 예전엔 운동하는 멋있는 언니들 보면서 '우와 관리하는 모습 짱멋져!'라고 속으로 ..
모든 간호학도들이 그렇듯, 나 역시도 평생 간호사만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들 임상 3년만 채우고 탈간할 생각들 하시잖아요?ㅎ.ㅎ) 내 직업을 간호사로만 한정짓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길거니와 글, 그림, 노래, 요리 등등 세상 온갖 취미는 다 보유해야 직성인 취미 부자 나로서는 간호사라는 직업에만 충실하면서 짬짬이, 야금야금, 취미 활동을 병행하기에는, 또 내 인생이 너무 짧다. 그리고 뭐 다들 그렇겠지만 먹고 사는게 팍팍하기도 하고, 간호사 이후의 삶도 준비하기 위해 월급 이외의 또다른 수입을 확보하는, 이른바 파이프라인을 늘여보자는 생각도 계속하고 있다. 간호사 이외에 나의 소소한 취미를 활용해 취미 활동도 하고 작고 소중한^^ 수입이라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이모티콘을 만들어보기로 ..
오늘 공인중개사를 다시 방문해서 최종으로 방을 보고 계약을 했다. 병원 5분 거리에 나름 깔끔하고 쾌적한 곳으로 골랐다. 내가 살게 될 방을 살펴보고 주변 동네를 둘러보았다. 낯선 풍경과 사람들. 계약 과정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빠르게 흘러가는 설명들과 계약서 위로 바쁘게 쳐지는 형광펜 줄들. 그렇게 낯선 동네를 방황하고 쏘다니다가 익숙한 나의 방으로 돌아왔을 때 느껴지는 건, 이 곳을 곧 떠나야 하는구나. 무엇이 그리도 갑자기 나를 울적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신규 간호사로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 낯선 지역으로 이사 가야 한다는 점이, 익숙한 사람들로부터 떨어져야 한다는 점이, 혼자 힘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점이, 이제는 나의 어금니와 주먹을 꽉 죄어야 한다는 점이. 아니 어쩌면 이 모든 것들..
20대, 30대에는 성공할 수 없다. 무조건 한 번은 깨지게 되어있다. 젊은 나이에 무수히 실패해보고 절망해야 한다. 그것만이 내가 무수히 도전했다는 증거이므로. 뭘 하든 내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온통 다 감당하기 버거울 것이다. 계속 깨지고, 좌절감을 맛보고, 내가 생각보다 별거 아니구나 처절하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성장시키는 힘이다. 좌절하지 않으면 성장도 없다. 땅바닥에 엎어져 울지 않으면 진보도, 깨달음도 없다. 그러나 이후에 돌아봤을 때 그때의 절망은 얼마나 값진 것이겠는가! 나를 부수고 짓밟던 것들이 나를 지탱하는 주춧돌이 된다. 먼 훗날 '그래도 하루라도 젊은 날, 시련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게 다행이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쉬운 길을 찾으려 하지 말자. 고되고, 비난..
방년 26세, 살아오면서 나름 생각한 것도, 깨달은 것도 많다. 그래도 종종 까먹길래 이렇게 정리를 해놓아야겠다. 돈보다 자유로운 삶이 우선이다. 돈은 없다가도 생기지만 시간과 기회는 흘러가면 그만이다. 다들 별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먹고사니즘은 누구에게나 다 힘들고 그건 특별한 것도 아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남들이 말하는 정답을 살아내려 하지 않고 다만 내가 선택한 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야겠다. 인생은 어떻게 풀릴지 알 수 없다. 내일 죽는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오늘의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자. 행복은 주도적으로 찾아 나설 때 발견할 수 있다. 유튜브나 sns로 시간 흘려보내는 그런 거 말고. 멍하게 있거나 게을러지는 그런 거 말고. 즐겁고 쉽..
6월 입사를 2주 앞두고 자취방을 보고 왔다. 사실 굉장히 걱정했다. 나는 사회초년생이고, 이전에 자취해본 경험이 없는지라 원룸 구하는 과정을 1도 모르는 탓에,,,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공인중개사에 가서는 뭘 말해야 하나 싶고, 가서 호구 잡히면 어떡하나,,,는 걱정을 꽤 했다. 아는 게 없다 보니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다. 늘 새로운 경험을 시작하는 데는 두려움이 뒤따르는 것 같다. 하지만 무작정 걱정만 할 수는 없는 법, 어떻게 나의 미숙함을 이겨낼 수 있을까? 첫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 내가 모른다는 것 인정하기. 지금 잘해 보이는 사람들도 처음엔 다 모르고 시작했다! 나의 미숙함은 정말 보편적인 경험이라는 것 이해하기. 누구나 다 그렇다, 너도 똑같다. 내가 모르는 분야를 잘 알고..
신규간호사로 발령을 받아 입사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사항들이 몇 개 있다. 구체적인 사항들은 병원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나의 준비 과정들만 정리해보겠다. 입사 전에 미리 근무하게 될 부서를 알려주는 병원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출근 하루 전날에 부서를 알려준다고 하니, 부서 관련하여 미리 준비할 수는 없고, 개괄적인 준비 정도만 해 갈 예정이다. 어차피 미리 준비한다고 해도 실제로 맞닥뜨리는 상황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지나친 부담은 덜어내고서 가벼운 마음으로 입사하는 게 좋겠다. 독립하기 전까지 병원과 부서 측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의 단계가 존재하므로, 그 정도만 잘 준수하면 병원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을거라 생각한다.(물론 업무 한정^^ 인간관계는 어찌..
올해 오월은 광주민중항쟁 41년을 맞는 달이다. 오월을 맞이하여 고요한 마음으로 작가 한강의 소설 를 펼쳤으나, 처참한 마음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닫았다. 는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을 주요 무대로 담고 있다. 이 소설은 광주민중항쟁 당시에 있었던 인물들의 입장에서 한 챕터씩 그려간다. 그려지는 소설의 모습은 적나라하기 때문에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을 쿡쿡 저며오게 한다. 독자가 등장인물로 직접 들어가 그 상황 속에 처해지도록 하는 독특한 서술 방식에, 직접 나의 피부로 느껴지는 듯한 생생함을 받았다. 소설의 문체나 묘사들이 은은하면서도 구슬프다. 쓰이는 글말은 부드럽고 처연할지 모르나, 독자는 책 속에서 만나는 인물들과 상황들로부터 처참한 아픔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관상계의 2인자 없는 1인자로 소문이 자자한 신기원 할아버지께 관상을 보러 다녀왔다. 허영만 '꼴' 만화에도 등장하시고, 영화 관상에 자문도 하셨다던데 관상 쪽에서 꽤 이름을 떨치시는 분인 것 같았다. 시간에 맞춰 예약제로 진행하는게 아니라 일찍 온 사람이 먼저 명단에 이름을 적고, 앞사람 순서가 끝나는 대로 그다음 사람이 들어가는 시스템이다. 그러니까 만약 내가 방문한 날, 대기하고 있는 앞 사람이 많다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관상 연구소는 12시에 오픈이어서, 미리 가서 제일 첫 번째로 이름을 적어놓을 요량으로 10시에 도착했더니 1등으로 적을 수 있었다. 특히 주말에 방문자가 많을 수 있으니 오전 시간에 여유가 되는 사람들은 10시 전에 도착해서 1등으로 이름을 적어놓고, 남..
엊그제 늦은 저녁, 병원 측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6월 1일 자로 출근하라는 내용이었다. 드디어 간호사로 발령이 난 것이다. 작년 여름 7월 즈음인가 최종 합격 메일을 받고 거의 1년 만이다. 1월 말에 국시가 끝나고 4개월 동안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들만 했다. 부모님은 그 시간에 놀 바에야 웨이팅 알바를 하면서 돈이라도 버는 게 낫지 않나,라고 했지만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뭐고 살고 싶은 인생이 뭔지 탐색할 시간은 지금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평생 직장으로 간호사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간호사 말고도 먹고 살 길은 많고, 굳이 고생하는 일을 평생 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렇다면 당장의 돈보다도 앞으로 나의 길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