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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_한강 <소년이 온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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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_한강 <소년이 온다>

세나SENA 2021. 5. 15. 17:13

올해 오월은 광주민중항쟁 41년을 맞는 달이다.
오월을 맞이하여 고요한 마음으로 작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펼쳤으나, 처참한 마음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닫았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을 주요 무대로 담고 있다.


이 소설은 광주민중항쟁 당시에 있었던 인물들의 입장에서 한 챕터씩 그려간다.
그려지는 소설의 모습은 적나라하기 때문에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을 쿡쿡 저며오게 한다.
독자가 등장인물로 직접 들어가 그 상황 속에 처해지도록 하는 독특한 서술 방식에, 직접 나의 피부로 느껴지는 듯한 생생함을 받았다.
소설의 문체나 묘사들이 은은하면서도 구슬프다. 쓰이는 글말은 부드럽고 처연할지 모르나,
독자는 책 속에서 만나는 인물들과 상황들로부터 처참한 아픔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당시 광주 금남로를 달려보자는 말로 책을 권하고 싶다.
같이 달리면서 처절하게 느끼고 생각해보자고,
누구에게나 충분히 그러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소중한 책이다.
특히나 오월이라면, 꼭 한번쯤은 읽어보길 바란다.


광주의 금남로와 전남도청에 흩뿌려진 피를 생각한다.
망월동 묘역에 부릅뜬, 핏발선 눈들을 생각한다.
군인이 쏘아 죽인 시신들을 리어카에 싣고 총구 앞으로 달리던 사람들과,
죽을 것을 알면서도 최후의 순간까지 전남도청에 남았던 시민군들과,
하얀 소복이 찢기고 머리가 헝클어지고 경찰서에 끌려가도록 소리를 지르고 현수막을 펼치려는 어머니들을 생각한다.
광주 이전의 청계피복노조와 YH 여공들의 투쟁에서도,
광주 이후 2009년 용산 참사의 불길 속에서도 광주를 생각한다.

책 속에서 동호는 묻는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고,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지.
도대체 왜 그랬을까.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고, 나라를 나라이게 하는지 생각했다.
목숨이 붙어있다고 모두 인간이 아니고, 영토와 국민이 있다고 모두 나라가 아니듯이.
어떤 자는 제 사람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총구를 향해 서슴없이 나아간다.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 질문은 4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칠 수 없다.

어떻게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전남도청 앞 분수대의 모습


개 패듯이 끌려가는 사람들과 처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 앞에서 한없이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단지 사람답게 살기 위해,
무릎 꿇고 사는 것이 아니라 서서 죽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던 우리 사람들의 모습 앞에 나는 얼마나 떳떳할 수 있는가.


망월동 묘역 앞에서 흘렸던 눈물을 기억한다.
불끈 쥐었던 두 주먹을 기억한다.
부끄럽게 살지 않겠다던 다짐을 오늘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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