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나의 뜻밖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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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도전

7km 한강 러닝 완주하기

세나SENA 2021. 5. 25. 23:03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운동 유목민이었다.

원체 움직이는 거 싫어하고 아메바마냥 흐느적거리며 뒹구는 거 좋아하고 운동이라면 극혐하는 편인지라,

그래도 생존은 해야겠기에 꾸역꾸역 '운동'이라는 것을 해내면서도 어느 하나에 정착하지 못해 이리저리 떠도는 삶을 지속했다.

 

20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운동? 그게 뭐죠? 먹는건가'를 남발하며

나는 운동따위 안 해도 천년만년 오래 살 것 같았다.

운동 같은 건 다이어트를 위해서만 하는 건 줄 알았지~~~~

젊고 패기 넘치던 그 시절을 지나고,

대학교 3학년만 되니 병원 실습 끝나고 기숙사 가는 오르막길에서 헉헉거리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여실히 그 바닥이 드러나버린 내 체력을 실감했다.

예전엔 운동하는 멋있는 언니들 보면서 '우와 관리하는 모습 짱멋져!'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들도 역시 살기 위해서 운동하는 거였겠지,,,,

 

아무튼 운동해야겠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서 이것 저것 여러 운동들에 정을 붙여보려 나름 열심히 노력했다.

그렇지만 아아, 다가가려 해도 내게는 너무나 먼 운동의 세계여,,,

아무리 정을 붙여보려해도 2n년 게으름이 더 찰떡같이 붙어있는 나에게는 운동은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정뚝떨이었다.

헬스, 러닝머신, 웨이트, 농구, 필라테스, 수영, 아쿠아로빅, 사이클링.

이렇게나 다양한 운동들을 많이 도전해봤지만 사실,

거의 대부분 두세 달을 못 넘기고 그만뒀다.

 

그래도 운동은 해야겠으니까 어찌저찌 꾸역꾸역 해보려 하기는 하는데,

하다가 관두고, 다른 것 또 하다가 관두고, x100만 번 반복하니까 제대로 운동 효과도 보지 못했다.

한 가지를 정해서 정을 붙이고 꾸준히 이어나가고 싶은데 그런 운동을 계속 찾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부터 벌써 1년간 꾸준히 하고 있는 운동이 생겼으니, 그것은 바로 러닝이다!

원래 러닝머신에서 5분도 뛰기 힘들어하던 나였는데, 한강 달리기에 재미를 느낀 이후로

거의 매일 1시간씩 달리고 있다.

 

 

한강은 진짜 뷰맛집이야,,,,

달리기 싫은 날에도 저절로 나를 달리도록 만들어준다.

저녁 어스름에 밖에 나가서 서쪽 하늘에 걸린 주황빛 해를 바라보며 달리는 그 기분은, 정말이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할 것이다.

 

 

나는 여러 운동들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 '힘들어도 꾹 참고 버티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 (뭐, 누군들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냐만은)

웨이트 할 때 핏발 선 눈으로 '마지막 두 개만 더!'를 외치며 무게 드는 것도,

필라테스 할 때 바들바들 떨리는 허벅지를 부여잡고 강사 선생님이 세는 숫자 아홉과 열 사이의 무한한 시간을 버티는 것도,

3대 3 농구할 때 카운트되는 시간을 보는 것도,

모두 내가 운동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하지만 한강 달리기는 이러한 끝내주는 경치로, 달리기의 지루함과 괴로움을 잊게 해주는 엄청난 효과를 갖고 있다.

해 질 녘 어슴푸레 땅거미가 지기 시작할 무렵의 경치와,

해가 모두 지고 남색 빛깔로 하늘이 물들고, 동쪽 하늘에서 덩실 보름달이 완연한 자태를 드러낼 때,

강 건너편 무수히 반짝이는 야경을 바라볼 때면,

그야말로 넋을 놓고 바라보며 달리게 된다.

 

 

그렇다고 달리는 매 순간순간이 좋은 건 아니고^^

물론 힘들다^^

숨은 차는데 마스크까지 껴서 답답하고, 관절에 옆구리까지 아파올 때도 있고, 목표 지점은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고,,,

 

하지만 달리기 시작 전에 미리 목표 거리를 설정해두면 절대 중간에 쉬지 않고, 걷지 않고 쭈욱 달리게 된다.

왜냐하면 달리기는 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언젠가는 완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도저히 달리기가 힘들다면 내가 가능한 최대한으로 느리게 달리면 된다.

거의 느리게 걷는 거나 마찬가지인 속도로 말이다.

달리다가 폐가 터질 것 같이 아프고, 이 레이스를 끝내지 못할 것 같을 때 나는 페이스를 낮추지, 걷지 않는다.

중간에 걷게 되면 오늘 목표한 달리기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실망감이 찾아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느린 속도로 달린다 하더라도, 걷지만 않는다면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제칠 수 있다.

그러니까 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엔 승리하는 싸움을 나는 하고 있더라.

그것이 나에게 주는 승리감과 만족감 때문에 나는 1년이 다 되도록 러닝을 지속하고 있다.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나만의 피니시 라인.

 

피니시 라인을 들어오기 전에 300m가량 길이의 다리를 건너와야 하는데,

막판 300m가 얼마나 힘들던지! 이때만 되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목표를 눈앞에 뒀을 때, '이만하면 됐지'라는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드나 보다.

그만 달리고 걷고 싶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잘 안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죽지 않아, 죽지 않아!' '가자, 가자, 가자'를 무한 반복하며 달린다ㅋ

아마 옆에 지나가는 사람이 들었으면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겠지,,,

 

 

 

그래, 죽지 않는다.

나만 놓지 않으면 끝에는 결국 이기게 되는 달리기처럼.

이렇게 오늘도 러닝이라는 나만의 고운 숫돌 위에 내 마음의 날을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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