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나의 뜻밖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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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드는 생각

신규 간호사 퇴사, 이제 뭐 먹고 살지?

세나SENA 2021. 6. 14. 17:11

대병에 6월 1일 자로 입사하여 6월 10일에 퇴사했다.

이틀 간의 오프를 빼면 8일 동안 출근하고 간호사 생활을 마무리했다.

 

간호사, 참으로 힘들었다.

매일매일을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며 늘 눈물을 달고 살았다.

차라리 출근길에 잘못되었으면 좋겠다는 나쁜 생각을 할 정도로 스트레스는 극심했다.

 

 

 

탈임상, 참으로 잘했다.

간호사를 할 때는 하루하루가 막막하고 앞길이 어두웠는데

병원을 나오고 나니 내가 갈 수 있는 길, 할 수 있는 일들이 참으로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 하여 다시 정리해보는 나의 탈임상 이유,

1. 신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고생한다(근무 중에는 물론이고 퇴근 후에도 그렇다).

간호사는 탄다, 그것도 아주 자글자글. 재가 되도록.

그에 비해 월급은 적고, 인정받지도 못한다. 환자에게서도, 의사에게서도 무시받기 일쑤이다.

 

2. 간호사는 너무나 작은 세상 속에서 일한다.

임상 실무에서 쓰이는 일들은 오로지 임상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일들이 대다수이다.

간호 술기, 차팅, 다른 부서 및 의료진들 간 의사소통 등 여러 업무들은 병원 밖을 나오는 순간 무용지물이 된다.

(뭐 물론 비스무리하게 적용될 수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경험이 될 뿐이다.)

그래서 어차피 병원에서 평생 일할 생각이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병원을 벗어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오래 머무를수록, 나중에 가서는 그간 배운 게 아까워서 못 떠난다. 내가 진짜 원했던 것은 점차 미루게만 된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부서에서 배우고 있는 내용들조차 어디까지나 그 부서에서만 통용되는 지식이다.

만약 내가 지금 수술실에서 일하고 있다면, 분만장으로 부서를 옮기는 순간 나는 또다시 신규가 된다.

 

결국 간호사를 하면서 내가 배우는 것들은 아주 한정적이고 좁을 수밖에 없다.

하루라도 더 젊은 나이에 더 넓은 세상과 더 많은 것들을 배우며 경험하고자 하는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임상 경력 몇 년을 쌓아서 다른 직업을 찾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들도 많겠지만 그건 소수의 직업에 해당할 뿐이다.

간호대 교수, 간호직 공무원, 보험심사평가 간호사 등등.

임상 경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들은 또다시 '간호'로 회귀해야 하는 직업들이다.

간호보다도 더 넓은 세상을 꿈꾼다면 결국 임상에만 갇히지 않고 바깥으로 뛰쳐나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나의 최종 목표가 간호사가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나의 최종 목표를 찾아 나서는 게 시간적으로 더 효용성이 있는 일이겠다 느꼈다.

 

3. 간호사는 발전이 더디다.

간호사의 업무는 시간이 흘러도 그 내용이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10년 전의 간호학과 강의 커리큘럼과 10년 후의 커리큘럼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의료 장비와 약제들은 지금도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간호는 이전 나이팅게일 시대와 견주어봤을 때 얼마나 변화했는가?

간호사로 연차가 10년 넘게 쌓였는데도 수간호사로 진급하지 못한 올드들이

신규들과 거의 비슷한 업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물론 일의 능숙도나 유연함은 최고였지만 업무 내용은 신규들과 거의 동일했다.

신규일 때야 배울 것이 너무나도 방대하고 많을 테지만,

업무가 어느 정도 능숙해지는 연차에 다다르면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나를 자극하거나 발전시켜줄 수 있는 무언가가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때가 되면 더 이상 새로 배우는 것도 없이, 반복되는 업무를 할 뿐이다.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발전하고 나의 가치를 끊임없이 높여가고 싶다.

한 곳에 머무르면서 반복되는 일을 하는 것은 나의 가치관에는 맞지 않았다.

 

 

 


 

 

 

드디어 탈임상했다.

그만둘 줄 아는 것 또한 용기라 했다.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바로 박차고 나올 줄 아는 것도 나를 위한 용기라는 것을 배웠다.

 

이제는 남들이 으레 가는 길이 아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길을 가고자 한다.

아직은 잘 모르고 앞으로 부딪히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기에 꿋꿋이 가고자 한다!

 

 

 

탈임상 이후 갈 수 있는 길은 넓고도 다양하다.

나는 지금은 CRA 쪽으로 알아보고 있는데, 임상 연구 진행 전반에 관여하고 조정하는 직업이라고 한다.

특히나 암 환자들에게는 신약 연구가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존재인지라,

암으로 세상을 떠난 가까운 가족을 간병했던 경험을 했던 나로서도 꽤나 의미 있는 일로 느껴졌다.

 

그 외에도 제약 회사에 다양한 포지션들이 있어 이들도 알아보고 있고,

간호학과 학생, 간호사들을 위한 교육 업체나 스타트업 포지션들도 고려하고 있고,

아예 간호대와 무관하게 영어 교육 쪽은 어떨까 막연히 고민해보고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진로들이 있는데 그중에 무엇을 어떻게 골라야 할까?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직업 요건을 몇 가지 꼽아보기로 했다.

 

1. 언제든지 쉽게 그만둘 수 있는 일

나는 일만 하며 살고 싶지 않다. 세계 여행도 하고 싶고, 다양한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고,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5~10년 이상 한 직장에 속해있어야만 하는 직업은 굳이 구하고 싶지 않다.

 

 

2. 나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일

하나의 직장 안에서만 한정된 업무 아니라, 직장에서 배운 것들을 활용해 다양한 일을 창출해낼 수 있는 업무를 하고 싶다.

직장에서의 경험을 살려 또 다른 새로운 시작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업무를 하고 싶다.

 

 

3. 나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일

나는 대학생 시절부터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잘하고, 또 좋아했다. 약간의 무대 체질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서 내가 가진 것을 어필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에게 아주 큰 자극이 될 것 같다.

또한 영어에 흥미가 있고 남들보다 다소 잘하기도 해서, 업무에 영어를 활용할 일이 있다면 그것도 아주 좋을 것 같다.

 

 

4.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일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늘 똑같이 출퇴근해야 한다면 그건 꽤나 답답할 것 같다.

한 곳에만 묶여있는 대신, 해외에서 일할 수도 있고, 외근도 나가고, 가능하다면 재택근무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5. 워라밸이 보장된 일

일을 하면서 건강을 해치고 싶지 않다.

지나치게 야근이 많거나 주말에도 일해야 하고, 식사 시간도 보장받지 못하는 일은 피하자.

 

 

간호사는 나의 기준 1번부터 5번까지 모두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내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내 일'을 찾아 나서겠다.

 

또다시 나의 행복을 찾아나서야지.

 

 

 


 

 

 

간호사 때려치고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는 거였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인생 영화로 꼽을 만큼 내게도 울림이 큰 영화였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나에게 가장 크게 위로가 되었던 문장이 있었다.

이 말을 언제나 유념하며, 곱씹으며 살아야지.

 

For what it's worth, it's never too late, or, in my case, too early to be whoever you wanna be.
There's no time limit. Start whenever you want.
You can change or stay the same. There are no rules to this thing.
We can make the best or the worst of it. I hope you make the best of it.
I hope you see things that startle you.
I hope you feel things you never felt before.
I hope you meet people with a different point of view.
I hope you live a life you're proud of.
And if you find that you're not, I hope you have the strength to start all over again.

무엇이든 네가 되고자 하는 모습이 되는 데에 늦거나 이른 것은 절대 없단다.
시간 제한 같은 것은 없어. 언제든 네가 원할 때 시작하렴.
너는 변화할 수도 있고 그대로 머무를 수도 있어. 거기에 규칙 같은 것은 없단다.
우리는 최고로 잘 해낼 수도 있고, 최고로 못할 수도 있지. 난 네가 최고로 잘 해내길 바란다.
너를 놀라게 할 것들을 보길 바란다.
네가 전혀 느껴보지 못한 것들을 느끼길 바란다.
너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길 바란다.
네 스스로 자랑스러운 삶을 살길 바란다.
그리고 만약 네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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