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나의 뜻밖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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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드는 생각

나는 왜 사는가?

세나SENA 2021. 6. 19. 14:28

종종 그럴 때가 있다. 하루가 못 견디게 공허한 날.
집에 있어도, 카페에 있어도, 바깥에서 산책을 해도,
아무리 무언가를 해보려 발버둥을 쳐봐도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유리 관 안에 갇혀있는 듯한 숨 막히는 답답함이 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을 떠나 어딘가 멀리멀리 떠나버리고도 싶은 그런 무자비한 공허함.
다른 공간으로 훌쩍 떠난다면 나에게 들러붙어있는 이 그림자 또한 떼어놓고 갈 수 있을까.



친구들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또다시 돌아오는 약속 없는 하루엔 어김없이 답답함이 찾아온다.
혼자 남겨진 시간이 마치 누군가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늘여놓은 용수철과 같이 느껴진다.
끊임없이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지만 시간은 더디게 흐를 뿐이다.



퇴사하기 전에는 마냥 장밋빛일 것 같던 하루도, 막상 퇴사하고 나니까 다소 적막하고도 공허해진다.
그렇게 바라던 나의 자유, 나의 시간인데. 무언가 길을 잃어버린 듯한 이 기분은 무엇일까?



삼일 밤낮을 방황하며 끊임없이 고민했다. '나는 왜 방황하는가?', '나는 왜 괴로워하는가?'
공원을 느릿느릿 걸으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결과, 마침내 어떠한 실마리를 얻어낼 수 있었다.
나는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간호사 시절 나의 의미는 생존이었다. 이 바닥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고 꾸역꾸역 살아남는 것.
3분 안으로 밥을 후루룩 마시고, 쪽잠을 자며 수면 시간을 채우려 애쓰는 것만으로도 나의 목표는 달성되었다.
하지만 병원을 뛰쳐나온 이후로 생존은 더 이상 내가 찾아 나서야 될 것이 아닌, 이미 보장된 것이 되었다.
퇴사 이후엔 살아남는 것 이상의 목표로 나의 하루를 채워야 한다.
나는 확실한 목표의 부재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그로 인한 결핍의 반응으로 공허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남는 게 시간이니까, 뚜렷하게 하고 있는 일이나 고민들이 없으니까, 게으르니까, 그랬던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찾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왜 매일 아침 눈을 뜨는가? 그리고 왜 누군가가 그걸 신경 써야 하는가?

https://youtu.be/qp0HIF3SfI4

이 테드 강연 영상이 나의 고민에 아주 큰 도움을 주었다.
영상의 요지를 짧게 말하자면,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건 결국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하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기술력과 자본을 가진 기업이라도 사람의 마음을 끌 수 있는 '왜'가 없다면 성공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인력을 고용하더라도 그들에게 '왜' 일하는지 심어줄 수 없다면 그들은 단지 월급을 위해서 일할 뿐이다.
'왜?' 그러니까, 곧 '목적'은 모든 인간 활동의 시작이며 원동력인 셈이다.



이 강연의 내용을 나 자신에게 맞추어 적용해보기로 했다.
나는 왜 사는가?



세상에는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Jamal Yahya  님의 사진, 출처:  Pexels

누군가는 위대한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해 살아간다.






누군가는 어머니가 되고,
















누군가는 지키기 위해 살아간다.









그렇다면 나는?



내 삶에서 가장 가슴 뛰는 경험들이 뭐였을까 떠올려보았다.
고등학교 시절 뮤지컬 배우로서 열심히 연습하고 마침내 공연하던 때,
캐나다에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던 때,
캐나다, 유럽을 자유롭게 여행하던 때,
대학에 와서 수백 명 사람들 앞에 자신 있게 연설하던 때.
나를 필요로 하는 후배들, 환자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고 느낄 수 있던 때.



마침내 나의 살아가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나는 세상을 탐험하기 위해 산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산다.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을 위해 살아가야지.
남들이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들을 좇아가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설정한 이유와 목적 아래서, 내가 찾아 나서는 삶을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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