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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의 뜻밖의 하루
대학을 다니는 6년 내내, 나는 당연히 간호사가 될 줄 알았다. 그리고 평생 간호사로 살 줄 알았다. 사람을 보살피는 게 좋고 내 몸은 고생스러워도 마음만은 뿌듯했으니까. 6년간 노력과 애정을 쏟아부은 간호학, 그리고 사람을 위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 남들보다 2년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데에서 오는 조바심과 졸업 후 첫 직장. 그 무엇 하나 쉬이 놓을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왜 열흘만에 병원을 뛰쳐나와야만 했을까. 먼저 간호사로 취업에 성공한 선배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들이 있었다. '출근하는 게 너무 무서워서 차라리 출근길에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라고. 근데 그 생각을 내가 하게 될 줄이야. 열흘 가량 근무하면서 수많은 업무, 선임들, 무자비하게 방대한 공부량 등등 많은 것들이 ..
6월 1일 자로 상급종합병원 종양내과에 발령받아 근무를 시작했다. 이제 2주 차, 거의 열흘이 다 되어간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힘들었다. 매일 우느라 눈은 항상 부어있고, 심계항진이 와서 잠은 제대로 자보지도 못하고, 8~9시간을 엉거주춤 서있느라 목과 허리, 발바닥이 욱신거리고, 오프날에도 출근할 생각만 하면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는 더 이상 살아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백 번씩 들었다. 물론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나름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에게는 다시는 돌아가기 싫은 나날들이었다. 남들은 입사한 게 아까우니 1년만 견뎌보고 임상 경력이라도 쌓아보라고 하지만, 난 단 하루 출근하는 것조차도 너무 괴롭고 무섭고 부담스러웠다. 짧은 기간 간호사로 살면서 결국 퇴사를 결정하게 된..
배치받은 병동에 오늘 첫 출근했다. 병동은 종양내과. '신규 간호사는 무얼 하나요?' '신규 간호사는 하는 게 없습니다. 왜나면 아는 게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 하는 게 없다. 아는 게 없다. 그저 열심히 배울 뿐이다. 우선 출근하고 1층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입뺀을 당했다. 출입증도 없고 뭣도 없으니까 옆에 있던 경비원?에게 올라가시면 안 된다고 제제를 당했다가 '첫 출근이시죠?'라고 묻는 말씀에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니까 '문 열어드릴게요'라는 대답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병원 올라가는 입구에서부터 코쓱머쓱;; 엘베를 타고 병동까지 올라가니 입구가 떡하니 닫혀있다. 역시나 출입증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 몰래 조용히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나, 환자들이 여길로 드나들 때 나도 덩달아 스윽 들어..
오늘 공인중개사를 다시 방문해서 최종으로 방을 보고 계약을 했다. 병원 5분 거리에 나름 깔끔하고 쾌적한 곳으로 골랐다. 내가 살게 될 방을 살펴보고 주변 동네를 둘러보았다. 낯선 풍경과 사람들. 계약 과정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빠르게 흘러가는 설명들과 계약서 위로 바쁘게 쳐지는 형광펜 줄들. 그렇게 낯선 동네를 방황하고 쏘다니다가 익숙한 나의 방으로 돌아왔을 때 느껴지는 건, 이 곳을 곧 떠나야 하는구나. 무엇이 그리도 갑자기 나를 울적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신규 간호사로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 낯선 지역으로 이사 가야 한다는 점이, 익숙한 사람들로부터 떨어져야 한다는 점이, 혼자 힘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점이, 이제는 나의 어금니와 주먹을 꽉 죄어야 한다는 점이. 아니 어쩌면 이 모든 것들..
6월 입사를 2주 앞두고 자취방을 보고 왔다. 사실 굉장히 걱정했다. 나는 사회초년생이고, 이전에 자취해본 경험이 없는지라 원룸 구하는 과정을 1도 모르는 탓에,,,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공인중개사에 가서는 뭘 말해야 하나 싶고, 가서 호구 잡히면 어떡하나,,,는 걱정을 꽤 했다. 아는 게 없다 보니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다. 늘 새로운 경험을 시작하는 데는 두려움이 뒤따르는 것 같다. 하지만 무작정 걱정만 할 수는 없는 법, 어떻게 나의 미숙함을 이겨낼 수 있을까? 첫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 내가 모른다는 것 인정하기. 지금 잘해 보이는 사람들도 처음엔 다 모르고 시작했다! 나의 미숙함은 정말 보편적인 경험이라는 것 이해하기. 누구나 다 그렇다, 너도 똑같다. 내가 모르는 분야를 잘 알고..
신규간호사로 발령을 받아 입사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사항들이 몇 개 있다. 구체적인 사항들은 병원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나의 준비 과정들만 정리해보겠다. 입사 전에 미리 근무하게 될 부서를 알려주는 병원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출근 하루 전날에 부서를 알려준다고 하니, 부서 관련하여 미리 준비할 수는 없고, 개괄적인 준비 정도만 해 갈 예정이다. 어차피 미리 준비한다고 해도 실제로 맞닥뜨리는 상황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지나친 부담은 덜어내고서 가벼운 마음으로 입사하는 게 좋겠다. 독립하기 전까지 병원과 부서 측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의 단계가 존재하므로, 그 정도만 잘 준수하면 병원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을거라 생각한다.(물론 업무 한정^^ 인간관계는 어찌..
엊그제 늦은 저녁, 병원 측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6월 1일 자로 출근하라는 내용이었다. 드디어 간호사로 발령이 난 것이다. 작년 여름 7월 즈음인가 최종 합격 메일을 받고 거의 1년 만이다. 1월 말에 국시가 끝나고 4개월 동안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들만 했다. 부모님은 그 시간에 놀 바에야 웨이팅 알바를 하면서 돈이라도 버는 게 낫지 않나,라고 했지만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뭐고 살고 싶은 인생이 뭔지 탐색할 시간은 지금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평생 직장으로 간호사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간호사 말고도 먹고 살 길은 많고, 굳이 고생하는 일을 평생 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렇다면 당장의 돈보다도 앞으로 나의 길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