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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간호사 첫 출근!

세나SENA 2022. 3. 15. 21:20

어제 약물안전센터 연구간호사로 첫 출근을 했다. 출근 전날 밤부터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잔뜩 긴장해서 아침 6시가 되기도 전에 알람도 듣지 않고서 저절로 깨버릴 정도였으니까. 나 같은 잠꾸러기한테는 정말 천재지변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나 긴장되나 싶었다.

출근길 내내 불안한 마음에 CRC를 무작정 인터넷에 검색해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조치였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가만히 지하철에 내 몸을 실은 채 가기만 하는데도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다행히도 일하는 곳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좋았다.

약물안전센터에서 일하는 연구간호사는 내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연구간호사와 업무 내용이 조금은 차이가 있었다.

여기는 임상시험 중인 약물이 아닌, 이미 시판된 약물에 대해 이상반응을 평가하고 이를 보고하는, 이른바 약물감시 활동을 주로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CRA 업무뿐만 아니라 PV 업무도 궁금했기 때문에,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좋은 기회가 된 듯했다.

 

첫날이라 일을 배우는 데에만 하루를 모두 보냈다.

근로계약서 쓰고, 출입카드 신청하는 등등 행정적인 업무도 처리하고, 인수인계 목록도 확인했다.

출근 전 잔뜩, 자아안뜩 겁먹은 것 치고는 너무나 스무스하게 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다들 너무나 좋은 분들이었다.

서글서글하고 친절한 분들이라 극 인프피인 내가 출근 첫날을 무탈하게 보낼 수 있었던 데에 큰 도움을 주신 분들이었다.

병원에서 일할 때는 잔뜩 주눅 들어 있었는데, 여기 오니 완전 헤.븐.이다.

 

 

간호사를 할 때보다 훨씬 행복하다. 난 뭘 하든 '나만의 것'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사람인 것 같다.

유니폼보다는 내 옷을 입고 일하는 게 낫고, 업무 공간이 완전히 오픈되고 남들과 공유되는 곳에서 일하기보다는 나만의 데스크에서 일하는 게 더 낫다. 다른 사람이 일일이 다 가르쳐줘야만 하는 업무보다도 어느 정도 나 스스로의 힘으로 배울 여지가 있을 때가 더 좋다.

나는 '나의 것'을 가질 때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인 것 같다. 나는 안정감이라는 게 중요한 사람이구나, 이참에 또 나에 대해 배워간다.

 

생각해보면 이런 것들을 모두 박탈당한 채 일해야만 하는 간호사라는 직업은 나에게는 역시나 맞지 않는 일이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내 시간조차도 빼앗겨야 했다. 그저 혼나지 않기 위해, 눈치 보지 않기 위해서.

 

 

한때 마시멜로 실험(눈앞에 있는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버티는 아이가 나중에 커서 더 성공했더라는 내용의 실험), 그리고 최근 몇 년 전 그릿 GRIT이라는 책이 유행할 적에는, 숭고한 목적을 위해 이 꽉 깨물고 버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끈기, 그릿, 1만 시간의 법칙, 절제 등등 요런 것들의 신화가 한 꺼풀 벗겨지고 있다.

요즘 나오는 자기 계발 도서들을 읽으면서 이들의 한계를 지적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Barking up the wrong tree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거기서 저자는 grit이냐 quit이냐를 결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quit 해야 할 때 quit하지 못하는 것은 더 많은 잠재적 성공의 씨앗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아갈 때 나아가면서도, 그만두어야 할 때 그만둘 줄 아는 것. 그러니까 남의 시선이나 조언이 아닌 내 중심으로 길을 걸어가는 것.

그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우면서 또한 그만큼 옳은 일도 또 없는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도전을 해야겠다 싶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에 가장 나답고 나의 역량이 가장 뿜뿜할 수 있는지, 도전을 통해 배워가야만 한다. 같은 책에서 언급하기를, 젊은 나이에 직장을 여러 번 옮긴 사람일수록 사회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주저 말고 여기저기 마구 도전을 해봐야 한다. 그래야 나에 대해 배우고 내가 클 수 있다.

그리고 계속하면 할수록, 점차 다음번 도전은 덜 두려워지지 않을까?

내 마음에 굳은살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새로운 직장에 다니는 건 아직 내게는 두려운 일인가 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어디든 나는 다 적응해왔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처음엔 버벅대기 마련이었지만 며칠만 지나면 금세 익숙해지고, 또 능숙해지기 마련이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그저 지금의 긴장감을 즐겨보자! 조금만 지나면 지루해질 테니.

그러면 그때 또다시 새로운 곳으로 훨훨 날아가겠지?

 

앞으로의 나날들이 두려우면서도 기대되는 오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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