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나의 뜻밖의 하루

CDA로 일하고 있습니다. 본문

Career

CDA로 일하고 있습니다.

세나SENA 2023. 3. 25. 19:58

블로그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다.

내 블로그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니 가장 최근 작성한 글의 날짜가 22년 7월이었으니까 벌써 8개월가량 지난 것이다.

8개월 남짓의 시간 동안 인생의 여러 사건들을 겪고 이런저런 곡절을 지나오다 보니 이 공간에 무심한 채 이렇듯 시간이 지나버린 것이었나 보다.

사실 글쓰기는 엄청나게 쉬운 일이면서, 또 엄청나게 어려운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써낼 수도 있는 반면에 그 마음을 먹지 못하면, 먹어지지 않으면 죽어도 안 써지는 게 글이라는 것이다.

 

지난 한 몇 개월은 나 자신을 채우는 데에만 열심이었던 것 같다.

임상시험 분야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기 위해 관련 공부를 하고, 멀지 않은 미래에 해외에서 생활하고자 하는 뜻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인문학적 소양도 놓치지 않기 위해 대하소설을 독파하고,

그렇게 늘 'input'을 어떻게 더 늘릴까 고민하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input'만 늘린다고 하여, 그것이 진짜 그 분야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느꼈다.

내 머릿속으로 들어온 지식을 나의 언어로 표현해 낼 줄 아는 'output'이 없다면 그것은 빈 껍데기 앎이라는 것이다.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당시 인턴 교육을 1달 반동안 받은 뒤 부서로 배치를 받았고, 최종 인턴 평가를 위해 부서 업무 전반의 프로세스에 대해 발표하는 일이 있었다.

1달 반동안 여느 때보다도 열심히 교육을 받고 공부를 했고,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이리저리 구글링도 하고 논문도 찾아보고 나름 치열하게 준비했다.

덕분에 프레젠테이션은 굉장히 만족스럽게 해냈고, 상사에게도 아주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자리에 있던 가장 직급이 높은 상사가 '감동적이었다'는 표현까지 썼으니 분명 성공적인 발표였을 테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고 그때의 발표 자료를 다시 살펴보면서 피식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실제 업무를 하면서 각 업무들의 면면을 알고 있는 지금의 나로서는, 이전의 내가 말하는 내용들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실무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그 정도의 자료를 준비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일 테다.

하지만 나의 'output'을 생산해보지 않은 자가 아무리 방대한 지식을 머릿속에 이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추상적인 지식일 뿐이다.

관리자는 실무자를 따라갈 수 없고, 지식을 소비할 뿐인 소비자는 지식의 생산자를 절대 따라갈 수 없다.

 

블로그 글을 다시 쓰겠다는 말을 너무 장황하게 내두른 듯하다.

결국에 결론은 나는 '생산자'가 되면서 더욱이 나의 깊이를 채워야겠다는 말이다.

 


 

나는 벌써 6개월째 CRO에서 CDA로 근무하고 있다.

내 블로그 이전 글이 CRA로 이직하고자 결심했던 내용이었는데,

참 인생이란 우습게도 어디서 변화구를 던져올지 알 수가 없다.

 

내가 하고 있는 업무는 임상시험에서의 데이터를 핸들링하는 일이다.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내가 이런 일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못 했다.

하지만 막상 이 직업을 시작하고 나니 꽤나 적성에 잘 맞는 일이라고 느껴진다.

매일 데이터를 들여다보는 일을 하기 때문에 남들은 지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근무하면서 종종 이상하게 신나고 흥분될 때가 많다.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 eCRF를 만들면서도, 메디컬 코딩을 하면서도, 포스트 리뷰 자료를 보면서도 희열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인턴 교육 때 강의로만 배웠던 내용들을 내가 실제 업무에서 수행하고 있다는 데에 신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뜻하는 대로 데이터가 핸들링되는 그 주도감(?)에 흥분하는 것 같다.

왜 이런 직무를 두고 이전에는 CRA만 고집했었는지 아쉬운 생각도 든다. 그건 분명 CRA 이외의 직무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임상시험 업계가 우리나라에서 생기기 시작한 지 2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분야인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대체로 CRC, CRA에 대해서는 알지만, 그 외에 임상시험 직군은 잘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다소 공익적인 뜻으로 이 블로그가 읽히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간간히 간호학과 출신들의 커리어 고민들이 댓글로 달리는 데, 나도 분명 과거에 그러한 고민들로 밤잠을 설쳤던 때가 많았기 때문에

내가 조금이나마 그런 고민들에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임상시험 업계는 폐쇄적이다.

무슨 뜻인고 하니, 외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은폐된 공간이라는 뜻이다.

바이오 기업들의 주가를 보면 알겠지만, 임상시험은 투입되는 그 시간과 비용도 엄청나고 때문에 제약업계의 매출과 존폐가 달린 경우가 많다.

실제로 생산되는 문서들을 살펴보면 죄다 confidential이 찍혀있고, 해당 임상시험 담당자가 아니면 같은 회사 직원이라 할지라도 그 내용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국내에 임상시험 종사자도 아직까지는 많지 않고 비교적 출신 학과들이 몇 가지로 추려지기 때문에, 건너 건너 알음알음 전해지는 소식을 얻어 듣지 않으면 이 업계에 대해 알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진로를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그리고 나의 'output'을 늘려 결국 나의 그릇을 넓히고자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펜을, 아니, 키보드를 켠다.

앞으로는 내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풀어내보고자 한다. 그게 또 당분간은 나에게 가장 신나는 주제가 될 것 같다.

혹여 임상시험 업계에 대해, 또 간호학과 출신으로서 궁금한 게 생기는 사람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말고 언제든 댓글로 물어봐주시길 바란다.

진심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일말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행복한 하루가 될 테니 말이다.

 

나의 오늘이, 어제의 내가 그토록 꿈꾸던 미래임을 알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