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나의 뜻밖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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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드는 생각

너무 잘하려고 하지마

세나SENA 2021. 8. 6. 20:58

병원에서 이번 주 마지막 근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문득 가슴이 답답하고 울적해졌다.

 

일이 그렇게 고된 것도 아니고 나름 편하게 일한다고 생각했는데 난 왜 답답해하는 거지? 궁금했다.

찬찬히 일기를 쓰면서 나 자신한테 물어봤다. 뭐 때문에 답답하냐고.

 

 

 

결론은, 너무 잘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나 자신이 더 많은 일을, 더 잘 해내도록 욕심부렸고

완벽한 계획에 스스로를 욱여넣으려고 닦달했다.

 

 

잘 하고 싶은 마음에 동동거리는 발.

 

1. 병원 일을 미스 없이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는데, 오늘 잠시 버벅거렸다.

몇 번의 실수와 미숙함을 이유로 나에게 윽박질렀다, '다음번에 또 이러진 말아라.'

이제 겨우 일한 지 5일 됐는데 말이다.

 

2. 채용 공고가 몇 개 올라왔는데, 그중 어떤 인턴십 공고의 모집 기한이 이번 주까지였다.

굳이, 반드시 그 공고에 지원할 이유는 없음에도 그저 '좋은 기회를 놓치긴 아쉬우니까' 지원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주말에 바쁜 와중에 휴식 없이 또 일, 일, 일을 반복해야 한다.

직장을 구하고 1주일 동안 적응하느라 나름 몸도 마음도 피로해졌는데, 주말 내내 자소서, 이력서를 써야 한다니.

 

3. 블로그를 더 잘 쓰고 싶었다. 방문자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나의 글을 통해 사람들이 공감하고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더 잘 만들어진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들 보기에 좋은 글, 조회수를 올릴 수 있는 제목을 생각하다 보니 글쓰기가 어려워졌다.

 

 

욕심이 얼마나 났는지, 주말에 러닝할 시간이 없을 거 같으니까 저녁에 달리러 나갈까 고민했다. 같은 날 새벽 5시에 이미 1시간 동안 달리고 와놓고...

 

울적한 마음에 무작정 바깥으로 나와 잠시 걸었다.

주황빛 노을에 드리워진 주황빛 구름을 바라보며 나의 울적함을 마음으로 느끼면서 천천히 걸었다.

어느 순간 문득, 마음이 말을 걸어왔다.

'넌 지금 그거 왜 하고 있는 거야?'

'네가 결정할 수 있어.'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아차 싶었다. 중요한 걸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그래 맞아,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왜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지.

자기 자신 갈아 넣어서 하면 뭐하냐고,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지 모르는데.

 

그래서 저 위에 있는 이유들에 '왜'라는 질문들을 달아보았다.

나의 대답에 곧 해답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젯밤엔 자면서도 투약 준비하는 꿈을 꿨다. 알게 모르게 부담감이 있었나보다.

1. 나는 병원 일을 왜 하나?

병원 일 자체에는 큰 뜻이 없다. 간호사를 계속할 생각도 없고 임상연구 분야에서 나의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고 싶다.

다만 여기에 취직한 이유는, 규칙적이고 생산적인 하루를 구축하기 위해서이다.

하루가 너무 늘어지지 않기 위해서 적당히 쉬운 일을 하면서 규칙적인 하루를 만들고, 남은 시간을 더욱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나 스스로를 자극해야 했기 때문에 취직을 선택했다.

그러니까 나는 직장에서 너무 힘을 빼면 안 된다.

오히려 퇴근 이후 시간에 나의 진짜 힘을 발휘해야 한다.

퇴근하고 난 후에도 직장에 대한 모든 생각들을 그야말로 꺼버려야 한다.

 

2. 굳이 그 기업에, 지금 당장 지원할 이유도 없는데 왜 해야 하나?

이번 주에 이미 많은 에너지를 들여 다양한 일들을 했고, 나의 주말은 회복 시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필요성이 떨어지는 일에 단지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안 그래도 바쁜 이번 주 주말에 또 다른 업무를 끼워 넣는다는 것은 과도하고, 쓸데없는 욕심이다.

그저 좋아 보이기만 할 뿐, '왜Why'가 없는 업무는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3. 나는 블로그를 왜 하고 있나?

조회수를 노렸으면 애초에 이런 스타일의 블로그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나는 나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딱히 눈에 띄진 않지만 그렇기에 정감 가는 이야기들을 적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받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싶었다.

1만 명이 훑고 지나가는 글이 아니라, 3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어주는 글이 되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잘 쓴 글은 내 블로그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잘 포장된 글일 뿐, 남들을 위해 쓰인 글이지 나의 글이 아니지 않나?

당장 나의 일기장과 블로그를 비교해보자. 둘의 차이가 크다면 나는 블로그를 잘못 운영하고 있는 거다.

블로그 글을 잘 쓰려고 노력하는 대신 나의 마음을 찬찬히 돌아보자.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냐고.

 

 

 

중요한 건 안 까먹게 자꾸자꾸 얘기해줘야겠다.

나는 뭐 하면서 살고 싶은지,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게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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